23년 10월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고 야간등산이 하고 싶었다.
퇴근 후 바로 가기 위해 출근할 때 무난한 경등산화를 신고 헤드렌턴을 챙겼다.
원래 아무리 낮아도 산에 갈 때는 항상 스틱을 챙겼는데 그날따라 스틱을 챙길지 말지 고민하다가 자주 가던 곳이니까~ 계단이 대부분인 코스인데 별 일 있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짐을 챙겼다.
늘 가던대로 계산역에서 계양산성 박물관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주치는 하산 해서 돌아가는 사람들, 나처럼 야등 하러 가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계양산이구나 싶었다.
계양산 정상에서 본 야경.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천에 이사 오고 한동안 동네에 정을 못 붙이고 살다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곳이다.
가볍게 챙겨온 샌드위치와 캔커피를 먹고 하산하던 도중, 정상에서 얼마 내려오지 않은 지점에서 순간 나무뿌리를 디딘 발이 미끄러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삐끗한 줄 알고 조금만 쉬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웬걸... 점점 다리가 붓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결국 지나가던 등산객분이 등산로 가장자리로 옮겨주시고 119까지 불러야 했다.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도중 올라오는 다른 등산객들 보기도 민망하고 구조대 분들에게도 죄송해서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힘드실 텐데도 너무너무 친절하게 말도 걸어주시고 괜찮은지 계속 확인해 주시는 게 정말 감사했다ㅠㅠ
그 다음주 주말 친구랑 단풍 보러 가기로 했어서... 사진 찍고 카톡으로 상황이 이렇게 돼서 다음 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구구절절 사과까지...ㅠㅠ
계양산에서 가까워서인지 한림병원으로 이송되서 입원수속 하고 응급실에 누워있다가 엑스레이 찍고 하여튼 정신없는 와중에 뼈가 부러진 사진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다른 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거 뼈가 부러진 거냐고, 진짜 부러진 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본 기억만 생생하다.
하필 주말을 끼고 입원 했고 다리 붓기도 바로 안 빠져서 하루정도 더 누워있다가 마친 수술... 다른 것 보다 하루에 물을 2리터쯤 마시던 사람이라 전날부터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금식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입원도 처음이고 수술도 처음이었는데 같은 병실에 있던 분들 조언대로 수면마취로 진행했고 언제 잠 들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드는 게 신기했다. 수술 도중에 한번 깨서 어리둥절하다가 옆에 있던 간호사쌤에게 다시 자면 되냐고 물어보고 다시 잠들었던 게 소소하게 재미있는 기억이다.(?) 그리고 최근 핀 제거 수술을 하면서 처음부터 수면으로 했던 게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한림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운영중이라 필요한 물건만 챙겨 오면 혼자 있어도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노트북이나 충전기 같은 것은 가족에게 부탁해서 가져오고 그 외에는 지하 1층에 있는 GS25 편의점에서 구매하거나 쿠팡으로 주문해서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나가면 흡연부스도 있는데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입원 환자들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나가는 길이 경사로라서 휠체어로 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통증때문에 잠들지 못한 밤.
버튼을 누르면 약물이 주입되는 무통주사를 이틀정도 내내 꽂아놓고 있어야 했다.
병원밥 하면 간 안맞고 맛도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같은 병실을 쓰던 분들도 다른 병원보다 밥이 괜찮다고 하시더라. 자취하면서 몇 년간 매일 도시락까지 싸서 다녔다 보니 밥때맞춰서 삼시세끼 앞에 갖다 준다는 점에서 병원생활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ㅋㅋ
수술 후 약 일주일정도 통깁스 하기 전 까지 다리 붓기 빼고 소독하면서 수포 올라오는지 확인도 했는데 계속 열이 올라서 해열제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변비... 살면서 변비라는걸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변비에 걸리면 힘들어하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통깁스를 한 뒤로는 씻지 못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머리는 화요일과 목요일 두 번 간병인 분들이 감겨주시는데 샤워는 못 한 다는 거... 가족에게 짐 챙겨달라고 부탁하면서 등산용으로 사놨던 샤워티슈도 갖다 달라고 했는데 이건 진짜로 입원 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다 보니 병원에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보통 보름이면 퇴원시킨다고 하더라. 나도 보름정도 입원 하고 귀가했는데 통깁스를 하고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친구에게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다니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봤는데 집이 좁거나 가구가 많으면 이것도 힘들었겠다 싶었다.
통깁스를 하고 약 6주 뒤 겨우 해방된 내 다리.
차라리 겨울에 다쳐서 다행이라고 느낀 기간이었다.
욕실용 높은 의자와 깁스방수커버와 흡착식욕실손잡이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몸을 씻는 것은 가능했지만 깁스 안에까지는 씻지 못하니까 약을 먹어도 계속 가려워서 얼음팩으로 둘둘 감싸고 손풍기로 바람 쐬어주고 얼마나 힘들었던가.
깁스를 풀고 시원함을 느낀 것도 잠시, 재활이 남아있었다.
발목 가동성이 떨어지면 똑바로 걷기 어렵고 특히나 발의 근육이 약해지면 평발이 될 수도 있으니 아파도 반드시 재활운동을 해야 한다고 의사쌤이 신신당부하셨다.
근데 이게 진짜... 너무너무 아프다... 아파도 해야한다... 그치만 정말 아프다... 혼자 하기에는 아파서 재활치료를 따로 받아야 되나 생각했었는데 집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 어떻게든 혼자 해냈다...
병원에서 알려준 방법은 의자나 책상을 손으로 짚은 뒤 수술받은 반대쪽 다리는 뒤로 뻗고 수술받은 다리의 무릎을 굽히는 것이었는데 이것 말고도 유튜브를 찾아서 낮은 강도의 근력운동도 같이 해줬다. 아래 영상이 재활운동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포스팅 하나로 끝내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져서 핀 제거 수술 후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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